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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람들이 공단을 떠나고 있다.))) - 퍼옴
작성자 이강선 등록일 2006-12-30 조회 172
첨부  
점점 늙어가는 공단…다시 봄날이 올까

임금 적고 주변환경 나빠…오는 사람 적고 가는 사람만사내방송·카페·문화행사 등 즐거운 회사 만들기 안간힘

서울디지털단지(옛 구로공단)에 있는 네트워크 전문 서비스업체 ‘오늘과 내일’ 홍보팀 직원들은 요즘 연말 분위기를 느낄 겨를이 없다. 내년 초 시작하는 정규 사내방송 준비로 인트라넷에 방송 청취 시스템 만들랴, 프로그램 짜랴 하루가 짧다. 1월5일부터 아침 30분 동안 음악과 함께 직원들의 사사로운 속얘기까지 담긴 첫방송으로 사내를 가로지를 예정이다. 중소 벤처기업이 대기업의 전유물로만 알았던 사내방송을 하게 된 데 대해 이 회사 이인우 대표는 “일주일이 지루하지 않고 직원들 사이의 소통도 활성화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이 단지 15층짜리 코오롱 디지털타워 빌란트 입주 업체들은 지난해부터 ‘빌란트 임직원 친선의 밤’을 열고 있다. 올해 6월에도 130여 업체의 임직원 1천여명이 지하1층 주차장에 모여 맥주잔을 기울이며 장기자랑 등으로 친선을 다졌다. 지난해 첫 모임에선 상품 추첨 등 단순한 이벤트로 꾸려졌으나 호응이 좋아 문화행사로 바꾼 것이다.
문화 불모지 공단에도 중소 벤처기업을 중심으로 새 바람이 불고 있다. 서울디지털단지의 경우, 씨제이인터넷, 엠디에스(MDS)테크놀로지 등 사내 카페를 운영하는 업체들도 늘고 있다. 직접 바리스타(커피 제조 전문가)까지 고용해 사원용 카페(사진)를 운영하는 엠디에스테크놀로지의 이은영 과장(사업기획팀)은 “회사 차원에서 ‘즐거운 기업문화’를 중점적으로 강조하는 분위기”라며 “채용은 쉽지 않지만, 이직률은 다른 중소기업에 비해 대단히 낮은 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움직임이 공단의 대세는 아니다. 대부분의 업체들은 신규 인력 채용 과정에서부터 어려움을 호소한다. 중견기업 수준의 임금이 보장된다 해도 문화·복지시설과 주변 환경이 여전히 열악한 탓이다. 제조업은 더 초라하다.
지방공단은 ‘이중고’=서울디지털단지의 중소벤처 ㅇ사는 올해 40명을 채용할 계획이었으나 최종 합격자 8명이 여건·시설 등을 이유로 입사를 거부했다. 이 회사 인사팀 과장은 “한 합격자는 그냥 ‘구로가 싫어서’라고만 하더라. 기본적으로 지원자도 적고 조건에 맞는 인력을 찾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참 씁쓸했다”며 “‘구로’라는 표현을 아예 쓰지 말아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지방 공단은 ‘지방’이라는 불이익까지 두 배의 고충을 감수해야 한다. 한 지방 공단의 엘지전자는 입사 면접 때 서울 명문대 출신 응시생의 경우, 여자 친구에게 직접 전화해 “남자 친구 직장으로 지방이 괜찮은지” 묻는다. “데이트하는 데 문제가 없는지” 직접 확인하며 응시생의 이직 가능성을 따지는 것이다.

실제 공단 내 기업들은 젊은 인력을 1~2년 사이 놓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창원의 한 대학 관계자는 “졸업할 때는 90% 이상의 취업률을 보이지만, 반년 뒤면 60%대로 떨어진다”며 “중소기업 이탈자 때문”이라고 말했다.
공단에 문화·복지시설을=창원공단 내 중소기업 에스디의 이창수 사장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선도적으로 지원하고 공단 기업이 협력하는 방식으로 여가시설·문화를 조성해 근로자 프라이드를 높여주는 게 급선무”라고 제안하며 “설치될 ‘복지·문화시설’의 가치에 따라 기업이 동참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만은 않다”고 말했다.

지난 3월 조사에서도 공단 내 839곳의 중소기업 가운데 무려 734곳(87%)이 문화·복지시설이 구인난 해소에 ‘매우 도움’ 또는 ‘다소 도움’이 된다고 밝힌 바 있다.(표 참조)
창원공단의 다른 중소기업 대표는 “문화·복지시설을 무조건 새로 지으려는 건 어리석고 가능하지도 않다”며 “창원에도 공단 내 공동 시험설비장, 주변 컨벤션센터 등 비효율적으로 쓰이는 시설이 많은만큼, 정부·지자체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버려진’ 시설부터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삼옥 서울대 교수(지리학과)는 “노동자 문화·복지는 일단 해당 기업이 투자해야 할 몫”이라며 기업의 책임을 더 강조한다. 그러면서도 “현재의 중소기업들이 경쟁력을 갖추고 문화·복지에 투자할 수 있는 기업으로 혁신할 수 있는 기초적 지원은 정부의 몫”이라고 말했다.
강수돌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같은 공단 안에서도 시설을 향유할 수 있는 층이 대기업과 중소기업, 제조업과 서비스업, 내국인과 외국인 등으로 계급이 갈려 있다”며 “때문에 더 공동 복지·여가시설이 기본적으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강 교수는 “단, 그게 더 열심히 일하도록 하는 시설로만 머물 수 있기 때문에 노동자들 간 연대·소통하는 문화예술·토론 동아리 등의 자생 문화를 정부와 시민단체가 지원하는 일도 대단히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2006-12-29 한겨레신문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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