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음 글은 지난 설에 고향에 내려갔다가 아버지께서 노트에 적어 놓으신 글을 발견하고 옮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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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누리가 새하얀 눈으로 덮여 있어 보이는 곳마다 한 폭의 그림같이 아늑하고 평화롭게 느껴지는 날입니다. 저 아래 반마일 거리에, 나와 내 가족이 늘상 드날 수 있는 진출입 농로의 십자 교차로를 내려보노라면 한올의 머리카락도 흐트러짐 없이 가지런히 세워져 있는 3부 짧은 머리의 늠늠하고 의젓한 그분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두 행정면에 속한 양 마을을 일자 형태로 이어주는 그곳에도 노면 포장 공사 계획이 느즈막에 나마 수립되어 마음이 좋았습니다. 직무 수행차 현장을 방문한 군관계자(고 강성진님)는 포장 공사가 이루어질 길과 90˚각에 자리한 비포장부분(약15m)을 발견하고 자의적 사명감에 추가 포함하여 공사를 마무리 하였습니다. 그러고 나니 추가 포함된 농로의 한 쪽 변에 접한 땅의 지주가 이의를 제기하여 어려움을 겪었던 모습이 안타까워 잊혀지질 않습니다.
비록 15m라는 짧은 구간이나 공부에 농로로 정리가 안된 관계로 여러 사연을 머금은 채 노면포장을 체념한 상태 였던 길이었습니다. 그런 길의 공사를 마치는 것을 보니 오랜 장마끝에 맑게 개인 상큼한 푸른하늘을 보듯 했고, 공직자인 그분의 모습이 우러러 보였지만 그 기쁨 뒤에 민원 해결의 어려움을 겪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너무도 안타까웠답니다.
본인은 본면 토목기사와 민원인 댁을 방문, 사죄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으나 그의 마음을 열지 못하였습니다. 농로에 접한 용수로가 매설되어 휴경인 민원인의 토지를 (약 90여 평) 농지가격으로 매입하여 해소하려 마음먹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지목이 대지인 관계로 대지 값을 지불해야 함에 기능이 상실된 대지로의 가격 매입을 포기하고, 실면적 측량과정을 거쳐 해결하였습니다. 쌍방 모두 너무 힘든 중에도 그 분(고 강성진님)에게 힘이 되어주지 못하니 너무 면구스러웠습니다.
두어 해를 넘기고 난 후 파손 부위 덧씌우기 협의차 민원을 제기했던 지주와의 만남에서 군관계자의 안부를 물어와 ‘이젠 만날 수 없다’는 사연을 들려주는 순간 그분도 너무 놀라며 아쉬워했지요. ‘오가라면 오가는 동안 통화하는 동안도 만나는 동안 도덕성, 인간성, 성실성 어디 하나 흠잡을 데 없는 공직자 였는데, 너무나 안타까운 사람이었는데...’ 라고 민원인은 말했습니다. 또 민원인은 자신이 부자연스런 몸으로 해당관청을 방문했을 때 군관계(고 강성진 님)자 보다는 옆에 있던 관계자(제3자)가 포장부분을 걷어내면 되지 않느냐며 큰소리로 호통 치기에 화가 치밀어 군관계자(고 강성진 님)를 힘들게 했노라고 털어 놓았습니다. 민원을 제기한 장본인도 감복하는 모습을 보면서 모든 이들이 그 분(고 강성진 님)에게 가진 감정이 하나같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이며 이따금씩 겪는다’는 그 분의 말에 숙연해지는데 지역신문에서 고인이 되셨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전율을 감당키 어려웠지요. 조촐한 상머리에 마주하는 기회 한번도 못 가진게 두고두고 아쉬웁고 후회스럽습니다. 그곳에선 편안히 쉬면서 남은 가족들만 살펴주길 주제넘게 기도하는 마음으로 글을 씁니다. 이 길을 오가는 동안 아니 영원히 그 분의 모습 우러러 가슴에 간직하렵니다.
보이면 못본척 들려오면 못들은척
무심히 지나쳐도 그만인 당신
잡다한 걸림돌 괴로운 사연들
바쁜걸음 멈추어 길손아픔 보듬으니
오가는이 가슴마다 미소꽃이 피어나네
언제쯤 오실려나 십자로변 이길로
시려워 못잊어요 산허리 외딴집에서
마주하면 등돌리고 하소연엔 귀를닫고
기분따라 자욱따라 행하면 될당신
수많은 탄식속에 흘러간 날들
수렁가시 홀로헤쳐 길을 열으니
두손들고 뛰어나네 뽀오얀 버선발채로
부디한번 밟아보고 촛불되어 밝힌이길
힘에겨워 가셨나요 그모습이 가여워요
건설 도시과 故 강성진님께 마산면 안당리 358 김원규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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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께서 체념하고 있었던 15m 정도의 길 포장을 의연하게 행해 주신 故 강성진 님께 고마움을 표현하는 글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서 그 길 때문에 가슴앓이 하신 것을 알기에, 그 분께 얼마나 큰 고마움을 갖고 계셨는지는 충분히 알 수 있었습니다. 또, 그런 분이 돌아가셨다니, 아버지 마음이 짠하셨나 봅니다.
아버지는 수정하지 말고 그대로 올려 달라고 하셨는데, 곳곳에 비문이 많고, 문장이 너무 길어 사연을 모르고 읽는 사람은 이해하기가 어려울 것 같아 제 임의로 수정한 부분도 있습니다. 아버지는 최대한 그 일에 연루되었던 사람들을 나쁘게 표현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셨는데, 제 임의로 고치는 동안 혹시 실수한 게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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